절대평면세계의 끝에서 중2병을 노래한 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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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미스터리] 백설공주에 대한 짧은 고찰 by 적룡기사

"넌 백설 공주 이야기 속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뭐라고 대꾸해야 할까.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리고 무시하기로 한다. 관심을 보이든 안 보이든 이 여자가 남의 안색을 살피고 이야기를 멈추는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 막 그녀를 알게 된 사람이든 나처럼 20년 동안이나 그녀를 알고 지내온 사람이든,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다면 모두 같은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백설 공주도 결국은 죽지 않았잖아? 이 시점에서 이미 살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거잖아. 살인 미수는 될 수 있겠지만"

전 세계 어린이의 과반수가 숭배하는 유명한 동화로부터 저런 발상을 해내는 것이 참 그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

20여 년 전, 우연히 배다른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된 내가 갖은 고생 끝에 찾아낸 여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결과물은 나의 고생을 보상해 줄만한 감동이나 보람을 안겨주기는커녕 내 반평생에 어두운 그늘만을 드리우고 말았다.

"백설 공주를 죽이려던 왕비의 계획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일부러 난쟁이들이 없는 시간, 다시 말해 목격자가 없는 시간에 범행을 저질렀으면서, 어째서 백설 공주 앞에서 노파로 변장을 했던 걸까? 백설 공주가 죽고 나면 범행을 증언할 사람은 없을 텐데"
"......경계심을 없애려고 했던 것 아냐? 독 사과를 먹이기 위해서"

빈정거리듯이 한마디 내뱉어 봤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다.

"일부러 독이 든 음식을 먹이러 간다는 발상부터가 한심해. 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많이 있었어. 그녀들이 마시는 식수에 몰래 독을 푸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컵을 입으로 옮겼다. 컵 안에 담겨진 차는  내가 타준 것이 아니다. 그녀는 늘 종이컵과 티스푼 등을 핸드백에 지니고 다닌다. 당사자 왈, 남이 타주는 차를 함부로 마셨다가는 언제 어디서 객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전혀 믿지 않았다. 내가 그녀 앞에 나선 20여 년 전의 그날, 다시 말해 그녀가 자신이 XX그룹 회장의 배다른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날 이후, 그녀의 인간불신은 점점 그 정도가 심해져 최근에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는 데에 이르게 된 듯하다. 물론 그러한 그녀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매의 아버지는 자식 복이 별로 없으셨다. 사생아인 그녀를 포함하여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 한 나라를 움직일 정도의 재산과 권력을 움켜쥔 제왕치고는 당신의 핏줄을 남기는 데에 무척 소홀하셨던 것이다. 게다가 그룹의 후계자로 애정을 쏟아 부었던 큰 아들은 일주일 전 비행기 사고로 사망. 설상가상으로 그 충격으로 인해 아버지 당신께서도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
만약 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2년 전에 작성한 유언장에 따라 그가 지녔던 막대한 재산과 권력은 모두 우리들 이복 자매 앞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두 딸 앞으로만.

"그래. 백설 공주를 죽이는 것은 간단했을 거야. 한 나라의 왕비인 걸. 암살자를 고용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왕비는 그것으론 충분치 않았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백설 공주의 숨통을 끊어버려야만 만족할 수 있었던 거야......그래......그건 여흥이었던 거지"

그녀의 바보 같은 얘기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 담았다.
사과는 나에게 있어서 무척 특별한 과일이다. 지금도 냉장실의 60%는 사과로 가득 차 있을 정도다. 밥은 굶어도 사과만은 입에서 떼지 않는다.
그래서 30분 전 그녀가 사과 한 봉지를 들고 내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도, 나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입에서 군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은 배터지게 먹을 사과들이 이미 베란다며 냉장실에 가득 차 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답다고 해야 할지......그녀는 자신이 건네준 사과를 깎고 있는 내 옆에서 느닷없이 저런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독 사과를 이용한 살인 얘기를.
그녀는 늘 이랬다. 자신이 음식을 대접하는 입장이면서도 일부러 식욕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화제로 끄집어낸다. 그리고선 당혹스러워하는 손님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이 들여다본다. 너무도 바보스럽고 아둔한 취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독 사과 얘기를 꺼내면서 나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과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

그러나 이번에 그녀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사과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특별한 과일이다.
너무도 특별하다.

"후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나는 잘라놓은 사과를 한 조각 한 조각 기품 있게 집어 입으로 옮긴다. 그녀는 여전히 가학적인 웃음을 떠올리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난 말이지. 요즘에 계속 그게 궁금했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증오하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하고 말이야. 백설 공주 이야기 속의 왕비는 백설 공주가 독 사과를 먹고 쓰러졌을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너무나도 궁금했어."

나는 여전히 사과를 집어먹는다.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게 꿈이었어. 증오하는 사람에게 독을 먹이고, 그 사람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바라보는 게......"

그녀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하지만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지. 망상이야, 망상. 난 정신이상자는 아니거든.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단지 해보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순 없잖아?"

그녀가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부분을 강조한 것처럼 들린 것은 나의 착각일까?
어쨌든 나는 사과를 집어먹는다.

"그런데 말이지......그이가, 동기를 만들어 줬어. 너도 알고 있지? 그 사람, 출세욕이 워낙 강하잖아. 아버지가 남겨주실 지분들......너와 내가 반씩 나눠가질 그 지분들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다면......후후"

이해할 수 있다. 그 남자에 대해선 나도 그녀만큼이나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의 욕심이 망설이던 그녀의 등을 떠밀어 준 것이겠지.

"그래서 메리트가 생겨버린 거야. 왕비의 범죄를 재현해볼 만큼의 메리트가......네가 지금 먹고 있는 사과에도 치사량 이상의 독이 들어가 있거든. 주사 한 바늘의 양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는데, 내가 워낙 용의주도해서......준비했던 두 병을 전부 써버렸지 뭐니. 천천히 퍼지는 독이니까 금방 죽지는 않아. 먼저 사지와 얼굴이 마비되고......서서히 심장을 향해 가는 거야......"

나는 묵묵히 사과를 집어먹는다.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나보지? 미안하지만 아니야. 난 지금......"

거기까지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경악의 빛으로 물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사과를 집어 입으로 옮길 뿐이다.

"어......어째......서......"

그녀의 눈동자를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손과 발을 바라보고 있다.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자신의 손과 발을.

"......백설 공주 이야기에 대한 내 생각을 들려줄까?"

난 사과를 집어먹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것이 모두 왕자의 계략이었다고 생각해. 왕비도 결국은 백설 공주만 없으면 왕국 최고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미녀였던 거잖아? 그러니까 왕자는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던 거야. 왕비와 짜고 그 나라의 왕을 암살하여 나라를 차지하든, 백설 공주와 결혼하여 나라를 물려받든 말이지. 하지만 단 하나 확실했던 것은, 어느 경우이든 백설 공주와 왕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어."

접시는 어느새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사과 세 개를 나 혼자서 다 먹어치운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테이블 위에 기묘한 각도로 늘어져 있다. 그 입가에는 침과 토사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왕비와 짜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 그게 가장 확실하고 비열한 그의 취향에도 맞는 계획이었으니까. 그런데......백설 공주를 만난 왕자는, 그만 마음을 바꾸고 만 거야. 한 번 남의 마누라가 된 여자보다는 숫처녀가 결혼상대로는 더 낫지 않았겠어? 젊은데다가 훨씬 더 아름답기도 했고. 그래서 왕자는 백설 공주에게 왕비의 계략을 말하고, 절대 그녀가 주는 독 사과를 먹지 말 것을 귀띔해 준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왕비를 척살할 명분이 없어. 앞서도 말했지만 백설 공주와 왕비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왕자는 백설 공주와 연극을 했지. 일단 죽은 척을 하고, 자신의 키스로 되살아나는 연극을. 그렇게 되면 백설 공주는 죽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살해를 꾀했던 왕비를 처단할 대의명분이 생기게 되니까"

그녀는, 아니 그녀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는 아마 이 집에 오기 전까지 그녀를 위한 모든 알리바이를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이 아둔한 여자와는 달리 그는 용의주도한 남자였기 때문에, 계획대로 독살이 진행되었다면 그 알리바이 역시 깨뜨리기 힘들었을 테지.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용의자였을 때의 이야기다. 입장이 피해자로 바뀐 지금, 그 알리바이는 오히려 그녀 자신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그녀는 이 집과는 수백 킬로 떨어진 장소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알리바이는 이제 나의 결백을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될 것이다.
물론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넘어갈 거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녀의 사망이나 실종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바로 '나'니까. 의혹의 눈길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고 사람들을 멀리했던 그녀와 달리, 나에게는 동지가 많다. 그리고 친아버지와 친오빠를 한꺼번에 잃은 불행한 여인이라는 세간의 동정. 이 역시도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넌 늘 남을 믿지 않았어. 그래서 믿어야할 사람과 믿지 말아야할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던 거라고. 네가 평생을 다 바쳐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그 사람이야말로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어. 네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때, 네 핸드백 속의 종이컵에 독을 발라 놓고 있던 사람이니까 말이야."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실은 사과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나의 이복 언니가 사온 세 개의 사과가 가장 앞에 늘어서 있다.

사과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특별한 과일이다. 나의 집은 그 특별한 과일의 향기로 늘 가득 차 있다. 사과가 가득한 이 집에서, 과도를 가지러 가는 척 하면서 그녀가 사온 독 사과를 바꿔치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아, 역시 사과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특별한 과일이다. 이 과일은 늘 한 가지 교훈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의 그 날,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녀에게 그 사과 바구니를 건넸더라면, 그리하여 조금 더 빨리 그녀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면, 이 지독한 굴욕 속에서 20년이나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아둔한 여자가 내 언니라는 굴욕 속에서.

"걱정하지 마. 그 사람도 언제까지고 내 옆에 둘 생각은 없으니까. 당신의 왕자님은 내 취향엔 전혀 안 맞거든. 조금만 잘해주면 마치 자기한테 푹 빠진 거라고 착각하는 아둔한 사람......상속 문제가 마무리되고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엔 그 사람도 네 곁으로 보내줄게. 난 아둔한 사람은 딱 질색이거든. 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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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소모임에서 특정 소재로 짧은글 짓기를 할 때 써본 작품입니다. 짧은글임을 의식하고 썼기 때문에 분량은 5페이지 정도 밖에 안됩니다만...;



★☆수줍은 비너스의 가면을 버리고☆★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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