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면세계의 끝에서 중2병을 노래한 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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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SF] 칼이 열리는 나무 (2) by 적룡기사


악몽의 공세는 성분 검사에서도 이어졌다. 처음 총 열매의 총구에서 그을음이 발견되었을 때, 그리고 열매의 내부 구조가 구식 머스킷 총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연구원들은 ‘발사약으로 사용된 물질은 대체 뭐지?’라는 의문을 떠올렸다.



우선 아몬드와 닮은 ‘탄환 열매’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은 ‘납’이었다. 탄환에서만 노골적으로 납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역시 어딘가 인위적인 요소를 느끼게 했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나무 내부에 쌓여있던 다량의 각종 중금속들 중 하나를 선택적으로 배출한 것이라고 억지로나마 끼워 맞출 수 있었다.
납의 뒤꽁무니에는 생체 피막이 덮여 있었고, 그 위로 검은색 물질이 얇게 코팅되어 있었다. 구조상으로 볼 때 이것이 발사약 역할을 하는 물질로 추정되는데, 그 구성 성분은 다음과 같았다.
S
C⁴
KNO3

“지금 이걸 믿으란 말입니까?”

성분 분석표를 읽고 난 연구원이 그것을 거칠게 집어던졌다. 그의 눈동자엔 이 발견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탄환에서 발견된 검은 물질은 단순히 화약 역할을 하는 대체 물질이 아니라 화약 그 자체였던 것이다.

“흑색 화약은 정확한 성분 비율을 요구하는 인공 화합물입니다. 생물체의 몸에서 우연히 만들어질 리가 없다고요......이건 마치 고철상의 기계 부품들이 돌풍 속에서 제멋대로 결합해 비행기를 만들어 냈다는 소리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처음 칼 열매가 발견되었을 당시 연구원들 사이에선 이 나무가 연금술을 사용한 건 아니냐는 농담이 나돌았는데, 탄환의 성분 조사 결과가 알려지면서 우습게도 이것이 농담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로서 고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무가 총의 기믹을 갖춘 열매와 흑색 화약을 만들어내고 있는 눈앞의 상황과, 물질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킨다는 연금술, 과연 어느 쪽이 더 비현실적이란 말인가. 차라리 연금술을 믿고 싶은 것이 연구원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며칠 후 세 번째 탐사가 감행되었다. 그동안 일부 병사들을 숲 주위에 배치시켜 ‘총 열매’가 생겨나는 족족 베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탐사대가 도착했을 때 숲 입구에서 총격의 위협은 없었다.
그들은 우선 숲 전체에서 ‘칼 열매’와 ‘총 열매’의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조사했다. 이 조사엔 나흘이 소비되었는데, 조사 도중 숲 깊숙이 숨어있던 총 열매에 의해 두 사람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명중률은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좁은 숲길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동하다 보니 움직임이 둔해졌던 것이다.
조사 결과 숲의 대부분인 약 60%를 칼 열매가 차지하고 있었고, 총 열매의 비율은 고작 5%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남은 35%의 나무는 아직 열매가 열리지 않아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낮은 비율이라고는 하나, 총 열매는 마치 전염되어 가기라도 하듯 그 세력권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었다.
붉은 부족은 오랜 세월 성스러운 신의 숲을 모셔왔고, 그동안 숲에는 단 한 종류의 열매만이 열렸다. 지난 1차 조사 때만 하더라도 숲은 온통 칼 열매로 뒤덮여 있지 않았던가. 허나 지금 그 오랜 세월의 풍경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열매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서서히 숲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이런 극적인 변화가 찾아온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연구원들은 여기서 무서운 상상을 떠올렸다.
숲의 열매가 물갈이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명했다.
바로 자신들이 숲을 방문한 직후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는가.
오랜 세월동안 신의 숲을 방문한 인간은 붉은 부족의 지도자들뿐이었다. 그들은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보내온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상상하는 무기 역시 지금까지는 칼이나 창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창과 칼을 아득히 능가하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서.
나무는 이방인들로부터 새로운 무기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그것을 복제해 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거의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추측이 옳다면, 이들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불가사의한 생체 메커니즘을 지닌 변종 식물이 아니라, 총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을 복제해 낼 수 있는 고도의 사고 능력을 갖춘 미지의 지적생명체라는 얘기였다.

학자들이 표본과 조사 결과를 두고 씨름하는 사이 ‘라가바’에선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정부군은 생각지도 않은 병력 손실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이 숲이 앞으로 그들 나라의 배를 불려줄 커다란 자금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맡은 임무라는 것은 ‘감시’였는데, 그 목적은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단 숲의 폭주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병사들은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6시에 정기적으로 숲을 순찰하며 새로 열리는 ‘총 열매’들을 베어냈다. 그렇게 모인 열매들이 거의 500여 자루에 이를 즈음 그 사건은 벌어졌다.

이 날도 세 사람의 병사가 한 팀을 이루어 숲의 동쪽 지역을 순찰하고 있었다. 이 부근은 ‘총 열매’가 특히 빈번하게 열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배치되는 병사들도 정예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세 사람 중 가장 키가 작고 날쌔 보이는 병사는 지난 번 숲 입구의 총격전에서도 활약한 사내였다.
세 병사가 숲 속으로 600여 미터 가량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수십 개의 구슬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두 사람 뿐이었다. 셋 중 가장 키가 큰 병사는 미처 그럴 새도 없이 이미 수십 발의 총탄을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군의 정예답게 남은 두 병사의 반응은 재빨랐다. 그들은 즉시 죽은 병사의 몸이 쓰러진 방향 쪽으로 달려가 주변의 나무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간발의 차이로 또다시 수십 발의 총탄이 그들의 지나온 길 위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총알의 일부는 나무에 박혔는데, 두 사람은 그 순간 눈앞의 나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환청에 사로잡혔다. 
키 작은 병사는 즉시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황하는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머리 한구석으로 여긴 그야말로 천연 전투 훈련장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목창을 손에 쥔 미개 부족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을 뿐, 생사가 오가는 전투다운 전투는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상황에 맞지 않는 감상에 빠져있던 그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나무 두 그루를 사이에 두고 엄폐해 있던 다른 병사가 그 자리에 맥없이 널브러졌다. 만약 그곳에 나무가 없었더라면 그의 시신은 몇 미터나 앞으로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두 번째 사상자를 발생시킨 총탄은 그들이 엄폐물로부터 노출되어 있는 방향에서 발사되었다.

‘제기랄!’

최후의 생존자가 된 그는 즉시 몸을 더 낮추고 새로운 엄폐물을 찾았다. 운 좋게도 나무 두 그루가 짧은 간격을 두고 앞뒤로 솟아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따져보기도 전에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그 장소를 향해 내달렸다.
드르르르륵.
그의 발꿈치 바로 뒤에서 아슬아슬하게 흙먼지가 피어올랐지만, 다행히도 그는 무사히 목적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아......하아......하아......”

가쁜 숨을 고르려는 찰나, 또 한 번 귓전을 얼얼하게 만드는 거대한 총성이 울렸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후방을 지켜주던 나무에서 무수한 조각들이 흩어져 나왔다.
나무는 그 일격으로 거의 반파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때 병사의 간담이 서늘해진 것은 비단 그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
나무가 총격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불과 5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땅 위에도 커다란 구멍들이 만들어 지는 광경을.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이 두 번째 총은 산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군......”

정면에선 기관총. 등 뒤에선 산탄총.
이 궁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예전 총 열매들은 살상력은 있었을망정 조준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설사 잔탄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피해낼 자신이 있었다.
허나 이 녀석들은 달랐다.
이들은 너무도 정확하게 목표물을 조준하고 있었다. 게다가 예전 총 열매의 또 다른 결점이었던 재장전시간 마저도 극복해버렸다.
그는 다시 무전을 통해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렸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간 개죽음만 당할 뿐이라고.
통신을 마친 뒤 그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져보았다. 돌이 바닥에 떨어지며 바스락 소리를 내는 순간, 구슬들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돌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는 전방과 후방의 적을 향해 그 작업을 반복했다. 열매들의 탄환을 모두 소진시키려는 작전이었다. 기관총과 산탄총의 하모니는 10분 이상 계속 되었다.
마침내 돌멩이를 집어던져도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길한 예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군복 상의를 벗어 나무의 사정권을 향해 힘껏 던졌다. 다음 순간 커다란 총성과 함께 군복도 걸레조각이 되고 말았다. 
절망이 그의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무들은 자신들의 표적에 대해 학습하고 불필요한 발포를 중단한 것이다. 탄환 소진 작전은 실패였고 더 이상 시도할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게다가 계속 발포하는 동안 열매의 반응 속도도 빨라져서 이제는 틈을 노려 다른 엄폐 장소로 이동하는 일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초조한 심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필사적으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런 그의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기관총’이 있는 방향으로 대략 20여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기묘한 모양의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가지 끝에 열매는 매달려 있지 않았으나 무성한 잎과 하얀 나무껍질,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소름끼치는 무늬들은 분명 다른 나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헌데 이 나무는 지면에서 1미터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나무 기둥의 둘레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마치 거대한 꽃봉오리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나무의 꼭대기 부근에선 뭔가 둥그스름한 물체가 삐져나와 있는 것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으나, 다른 나무들의 잎사귀에 가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탕!

홀린 듯이 괴상한 모양의 나무를 바라보던 그를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들려온 한 발의 총성이었다.
‘기관총’도 ‘산탄총’도 아닌, 그렇다고 자신의 동료들이 지니고 있는 소총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와 그의 동료들이 라가바에서 가장 처음 발견한 ‘구식 총 열매’가 내는 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총에 맞은 것으로 착각하고 허겁지겁 온 몸을 뒤적였으나 어디에도 그런 상처는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총성이 울린 것으로 여겨지는 나무-자신의 뒤를 산탄총으로부터 막아주던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에 수십 개의 총구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총구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터엉!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어디선가 ‘산탄총’이 발사되었다.
헌데 이 역시도 그를 향해 발사된 것이 아니었다. 나무 꼭대기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열매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순간 그는 눈앞의 나무가 포효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무껍질 위의 무늬들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형태를 요란하게 바꿔나갔다. 그 모습에는 생물학이나 기호학에 아무런 조예가 없던 그조차도 본능적으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어떤 감정이 격렬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였다.
나무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 다른 나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분노를 직접적인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나무들 사이의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총 열매는 이전에 발견된 종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밀한 조준으로 산탄총 열매들을 하나하나 떨어트려 나갔고, 산탄총 열매 역시 그 무지막지한 파괴력으로 총 열매의 전력을 무력화시켜 나갔다.
병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무가 자신들의 전쟁에 몰두해 있는 사이 그는 있는 힘껏 숲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기관총 나무가 발포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에도 그의 뜀박질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정신없이 다리를 움직이는 그의 귀에는 여전히 쩌렁쩌렁한 총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발포하는 것은 이제 한 두 그루가 아니었다. 분노와 살의의 연쇄는 서서히 숲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음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한참을 달리던 그는 마침 숲속으로 진입하고 있던 동료 병사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무전 내용을 의식하여 두꺼운 방탄 장비들로 무장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저 치명적인 탄환들의 스콜 속에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도망쳐 나오던 병사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돌아가! 녀석들은 지금 전쟁 중이다!”

......
숲의 총성은 그가 무사히 귀환한 뒤에도 이틀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정부군과 연구원들이 할 수 있던 일이라곤 귀를 틀어막으며 망연히 숲 쪽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미개 부족들 간의 싸움을 말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였다. 이제 숲 속의 나무들은 적어도 파괴력에 있어서만큼은 정부군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저 총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이전과 같이 샘플을 채취하고 조사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두터운 장갑으로 무장한 장갑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가난한 나라가 그런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리 만무했기에, 연구원들 사이에선 이 일을 미국 정부에 통보하여 지원을 요청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조사단의 책임자가 그런 주지의 내용을 본사에 전달하였으나, 그들은 모처럼 발굴한 비즈니스 아이템을 미국 정부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을 꺼려하여 이를 일축해 버렸다. 대신 비밀리에 제3국을 통해 조사에 필요한 만큼의 대형 장비들을 반입시켜 주었다.
도착한 장비들 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것은 전면에 벌목용의 회전 톱날바퀴를 장착한 중장갑 전차였다. 이 정도 장갑이라면 현재 나무들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파괴력의 무기인 ‘산탄총 열매’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고, 이 그로테스크한 톱날로 숲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베어올 수도 있을 터였다. 그들은 그렇게 기대했다.

나무들의 전쟁이 종식된 후 장비가 도착할 때까지 한 달 이상을 허송해 버린 조사대는, 장비가 도착한 다음 날 곧바로 샘플 채취라는 명목의 벌목 작전을 개시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톱날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며 전차는 라가바를 향해 힘차게 돌진했다.
번뜩이는 톱날이 최외각에 있던 나무의 표면에 닿는 순간, 숲은 마치 당혹감과 분노에 휩싸인 것처럼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언의 비명과 저주가 일대를 장악했다.
나무들은 예상대로 반격을 개시했다.
기관총과 산탄총의 세례가 장갑 위로 쏟아졌지만 전차는 끄덕도 하지 않고 묵묵히 한 그루 두 그루 나무들을 베어나갔다. 베어 넘어간 나무를 수거하기 위해 또 다른 전차가 그 뒤를 따랐다. 
한편 나무들이 발포하는 소리를 들으며 병사들과 연구원들은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미 그 속에 구식 총 열매의 소리는 섞여있지 않았다. 모든 열매들이 기관총 혹은 산탄총 열매로 물갈이된 것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만약 자신들이 저 속에 맨 몸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야만적인 전쟁 문화의 상징인 전차들이 지금만큼은 너무도 듬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쾅!

땅을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전방의 탱크에 장착되어 있던 벌목 장비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쾅!
쾅!

또 다른 두 번의 폭발음이 울려 퍼진 뒤 이 상황의 타개책으로 기대를 모았던 중장갑의 전차는 그 자리에 침묵하고 말았다.
아니, 그것은 이미 ‘전차였던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조종석과 기관부가 있던 자리엔 검은 연기만이 가득 피어올랐고, 원래 있어야할 부속품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주변의 땅 위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후방의 전차는 황급히 후진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적진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쾅!

또 한 번의 폭발음의 차량의 한 쪽 궤도를 박살냈고,

쾅!

이어지는 폭발음이 그 조종석을 박살내 버렸다.
차량도 탑승자도 이미 그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폭발음은 그 잔해마저도 가루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끝없이 이어졌다.
이 광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정부군의 지휘자는, 그 폭발음이 자신이 예전에 용병으로 참전했던 전투에서 울려 퍼진 대전차포의 그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 뭐지?
저 숲 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숲으로부터 300미터 이상 떨어진 위치에서도 숲의 분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들의 시선이 자신들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모든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오랜 세월 해외의 전장에서 단련해온 그의 예민한 생존 본능이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경고음을 울려댔다.
병사들은 신속히 그의 명령에 따랐으나, 연구원 일행은 눈앞에서 연구 속행의 수단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퇴각을 꾸물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지휘관이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빨리 움직이지 못 해! 죽고 싶어!”

연구원의 리더 격이던 남자는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리며 이 사태를 본사에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지는 않을망정 현장 책임자인 이상 어느 정도의 각오는 해두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돌린 지 2초도 지나지 않아 그러한 걱정은 사라졌다.
아니, 그가 이승에서 지니고 있던 모든 걱정들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편이 정확하리라. 그를 구성하고 있던 모든 감정과 기억들이 칠흑의 장막 너머로 영원히 빨려 들어갔다.
단 한 번의 짧고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그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을 때, 동료 중 한 명은 그가 허둥대다가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진 줄 알고 그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러나 또 한 번의 바람 소리와 함께 동료애 넘치던 연구원 역시 그 자리에 쓰러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다른 연구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 다투어 달려 나갔다. 30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저격 라이플 열매’는 그 후로도 두 사람의 목숨을 더 앗아갔다.


덧글

  • 아야카 2010/03/08 19:19 # 답글

    이건 뭐 나무가 아니라 무기공장인듯[...]
  • 적룡기사 2010/03/08 20:11 #

    리플 감사드립니다^^
    그렇잖아도 그런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쓰는 중이었습니다.
    이번 글도 마지막엔 소소한 반전을 연출해볼 예정이오니 끝까지 감상 부탁드립니다^^
  • 시간이없어;; 2011/11/06 22:54 # 삭제 답글

    지금 시간이없어서 못보는게 아쉽내요;;;
    나중에 시간이나면 한번 보러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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